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민국 육군 (문단 편집) === 모표 === || [[파일:대한제국군_모표.png|width=150]] || [[파일:한국광복군 휘장.png|width=150]] || [[파일:1606798197375.png|width=150]] || [[파일:대한민국 육군 마크.svg|width=150]] || || {{{#fff [[대한제국군|{{{#fff 대한제국군}}}]] 모표}}} || {{{#fff [[광복군|{{{#fff 광복군}}}]] 모표}}} || {{{#fff [[조선국방경비대|{{{#fff 조선국방경비대}}}]] 장교 모표}}} || {{{#fff 대한민국 육군 모표}}} || 리본으로 결속한 [[월계수]]잎, 그리고 안에 [[국화(상징)|나라를 상징하는 꽃]]이 있는 도안은 [[대한제국군]]의 모표에서 유래했다. 리본으로 결속한 [[월계수]]잎, 그리고 안에 [[국화(상징)|나라를 상징하는 꽃]]이 있는 도안은 [[대한제국군]] 시절부터 있었다. 이를 [[광복군]]이 이어받고나서 [[이화문]] 대신 [[태극기]]의 태극문양을 도입하면서 광복군 모표가 되었고, 이후 [[국방경비대]] 시절에 현재와 유사한, 그러나 다른 형태의 패턴으로[* [[무궁화]]의 가지와 그 잎이다.] 윤곽이 잡혔고 구 정부상징과 그 모습이 유사한 [[무궁화]] 모양이 들어갔으며, 이후 대한민국 육군 창군 이후로는 무궁화가 한반도 남부 내 정부수립 이후 관습상 [[정부상징]]으로 인정되며 현재에 이른다. 위 모표들의 디자인적 유사성에서 알 수 있듯 광복군과 대한제국군의 모표가 대한민국 육군의 전신인 조선국방경비대와 현재 육군의 모표 디자인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지만 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긴 하다.[* 김정민, 홍나영. (2019). 한국광복군의 군모와 모표에 관한 연구. 한복문화, 22(1), 5-16.] 광복 이후 [[미군정]]은 당시까지도 [[일본군]] 색채를 미처 빼지 못한 한국의 군사조직들[* [[만주군]]은 물론이고 [[국부군]]도 일본군의 영향을 많이 받은 [[중화민국/군벌|군벌]]들의 영향을 받다 보니 한중일 막론하고 일본군과 상당히 비슷한 점이 많았다.]에게서 왜색을 지우기 위해[* 일설에 의하면 [[태평양 전쟁]] 당시의 [[PTSD]] 때문에 [[미군]]이 일본식 군대문화에 기겁했다는 썰이 있다...] 대한제국군의 전통을 많이 되살리려 노력했는데, 군가인 [[양양가]]도 그대로 쓰였고, 대한제국식 정부참 계급도 부활시키는 등[* 정부참 계급은 결국 다시 일본식 대중소 계급으로 회귀하지만 건군기에 잠시나마 부활했던 대한제국식 계급은 [[영관급 장교]] 계급에서 그 잔영이 남아 있게 된다. (이쪽은 [[광복군]]의 영향이라 보는 관점도 있다.)] 대한민국 육군의 전신인 [[군사영어학교]]에 광복군과 대한제국군의 전통을 많이 접목시켰는데, 이때 모표도 부활하게 된 것. 가운데에 있는 [[나라문장|국장]]의 태극은 세계의 중앙에 있는 [[대한민국]], 국장을 둘러싼 월계수(무궁화잎)는 군인으로서 쟁취할 승리와 영광, 월계수의 중앙 하단부 리본은 승리를 위한 기본 요소인 단결과 결속을 상징한다.[* [[http://m.blog.daum.net/mma9090/6128|링크]]][* 지금은 장교와 부사관의 모표가 동일하지만 [[1980년대]]까지는 현재의 [[대한민국 해군|해군]]처럼 부사관은 모표가 달랐다. [[:파일:육군 부사관 모표.jpg|모양]]은 현재의 모표에서 태극이 빠진 모습이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